엔리코 카루소(1873∼1921)
`카루소’라는 노래가 있다. 파바로티가 부르는 루치오 달라의 ‘카루소’는 무척이나 애절하게 들린다. 이 노래의 가사는 카루소의 일생을 압축해서 담고 있다. 그렇다면 카루소의 일생은 그렇게도 슬프고 불행했을까. 겉만 보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는 20세기 초에 가장 유명한 가수였다. 카루소가 활약할 당시는 지금과 같이 상업적인 대중음악이 아직 발달하기 전이었다. 따라서 카루소는 지금에 비하면 ‘마이클 잭슨’ 정도의 세계적인 명성을 누린 가수였다. 따라서 돈도 따랐다. 개런티는 ‘백지수표’에 자신이 써넣으면 될 정도였다. 그가 생전에 레코딩으로 벌어들인 돈은 약 200만 달러. 그가 그토록 유명세를 누리며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노래를 잘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직도 ‘역사상 최고의 테너 가수’라는 칭호가 뒤따른다. 지금 들으면 19세기적 가창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그의 노래에 담긴 희로애락의 현과 묘한 뉘앙스의 변화,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풍기는 카리스마는 ‘그의 노래 그 자체’ 외에 다른 무엇으로 표현하기 불가능하다. 카루소는 나폴리의 빈민가에서 7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창고 인부였다. 술주정뱅이였고, 음악은커녕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생각도 안하던 사람이었다. 10세부터 공장에 나가 자신의 밥벌이를 해야 했던 카루소는 저녁시간에 몰래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15세가 되어 정식 음악수업을 시작한 그는 베루지네라는 성악 코치에게서 배웠다. 베루지네는 카루소의 타고난 재능을 간파하고 그를 이용해 돈을 벌려 했다. 1894년, 베루지네가 성급하게 데뷔시키려 했던 무대에서 망신만 당하고 내려선 카루소는 이듬해 다행히 나폴리 테아트로 누오보에 별 무리없이 데뷔했다. 지휘자 빈센초 롬바르디를 만나며 인생의 행로를 바꾸게 되었다. 베리스모 오페라의 신봉자이던 롬바르디는 카루소에게서 참다운 베리스모의 구현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에게 많은 무대를 맡겼다.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카루소에게 베리스모 오페라는 체질적으로...